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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실 건가요?

나찬양 2023. 1. 11. 17:06

 

아직 ‘남편’이라는 호칭은 어색한 나의 배우자, 그는 완벽하게 나와 반대인 사람이다. 

나는 길고 살이 하나도 없는 얼굴, 그는 납작하고 살이 터질 것 같은 얼굴 (사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부분),

요즘 유행하는 MBTI 유형도 알파벳이 한 자도 겹치는 게 없으며,

난 고기를 전혀 못 먹는 타입이라면 그는 고기를 사랑하는 타입,

구두쇠 중에 구두쇠인 나, 구두쇠인 나를 경악케 만드는 소비패턴을 가진 그, 적으려면 끝도 없지 싶다.

“왜 자꾸 웃어?”

내가 물으면, “너 보니까 좋아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사한 여러 가지 버전으로.

“너무 좋지 않니? 난 너무 행복해.”
저렇게도 말한다. 손을 꼭 잡고.

너와 함께 있는데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지.”

 

세상에…, 이것만 보아도 나와 정말 반대인 사람이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들이 아니었다. 아무 일도 없는 보통의 나날들. 그렇다고 나라는 사람 역시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말이 내어지지 않는 나와는 달리, 마음속 말들을 고스란히, 어쩌면 더욱 근사한 말로 포장하여 모두 아낌없이 꺼내어 낼 줄 아는 사람이다.

 

영화의 어느 진부한 대사 같지만, 나는 정말 사랑 하나만 보고 결혼했다. 

반대가 많았던 결혼을 혼자 고민할 때, ‘이보다 더 날 사랑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있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나는 인기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가 만난 이들 중에 나를 사랑하는 정도를 비커에 재어낼 수 있다면 그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혹여 내가 가지는 그 감정이 나만의 착각이래도, 나 같은 극예민자를 속일 정도로 잘 연기해온 거라면, 충분히 속아줄 가치가 있을 정도로.

“당신은 다시 태어나면 나랑 결혼할 거야?” 라고 그가 물으면,
“나는 절대 다시 태어나지 않을 거야.” 라고.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하고,
“난 꼭 널 찾아낼 거야. 내가 더 멋진 사람이 되어서. 그리고 다시 너와 결혼할 거야.” 그는 대답한다. 유사한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적고 보니 조금 무섭기도 한데, 사실 그는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 부분이 완벽하게 나와 다른 사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결혼을 하였어도 사랑을 듬뿍 주었을 사람. 소중한 사람이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언젠가 내가 말로 내었던 모양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나 같은 소심이가 모두의 반대를 뒤로하고 사직을 하기로 스스로 결론을 내었던 때가 연말, 내 생일 즈음이었다.

늘 그렇듯 나의 생일을 내가 인지하기는 어려웠다. 그가 큰 박스를 들고 퇴근했다.

“이제 하고 싶은 거 해봐.”
열어보니 백 개가 넘는 색연필 세트와 컬러링북이었다. 그것이 지금 내 꿈의 시작점이다. 


그를 나무랐다. 이렇게 비싼 것, 다 쓰지도 못할 것을 샀다고 아주 오래도록 나무랐다.

그러고 마음속으로는 작은 나의 말을 담아두고 혼자 고민했을 그의 시간과 마음들에 목이 메도록 감사했다.

그가 선물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사직 후에도 여전히 수년간 갇혀 지냈던 나만의 우울의 세상에서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을게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써본 몇 자루의 색연필은 내 인생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돌려놓았다.  

감히 상상도 해본 적 없던 행복한 미지의 세계로. 

그 이후 그는 마치 산타처럼 크리스마스 즈음인 내 생일에 필요할법한 미술용품들을 선물해주었다. 나의 유일한 스폰서인 셈이다.

 

얼마 전, 그는 촙촙 접히는 새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이걸로 그림 사진 마음껏 찍어. 핸드폰이 너무 오래되었잖아. 행사해서 무료로 산거야. 돈 내는 거 하나도 없어!”

난 디지털 문물들에 철저한 문외한이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것이 그렇게 비싼 것임을, 돈을 많이도 지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를 호되게 나무랐다. 아주 잘 쓰고 있으면서. 참 난 이상한 구두쇠다.

굳이 돈 내는 게 없다고 마지막에 몇 번을 되풀이했던 그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림 과정이나 완성작들을 남기려 할 때마다 저장공간이 없어 지난 것들을 지워내고 찍고 포스팅할 때마다

낮은 화질이나 끊김 등으로 불편했던 나만 아는 나의 그림 일상에 누가 이렇게나 관심이 있을 수 있을까? 

나조차도 그때마다 불편하다고만 잠시 생각했을 뿐, 다른 방법들을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본인이 아껴 생활하겠다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잡아주는 손에 따스함이 듬뿍 전해졌다. 

이것은 내가 그에게 감사했던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고 남기는 글이다. 

깊은 우울의 나날들에 내가 내가 아니었던 때어도 나를 안아준 사람이자 그런 나조차도 꿈꾸게 해 준 사람. 

 

사실 정반대의 사람과 살아가는 일은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내 안에 못된 마음이 솟구치려 할 때, 내 마음을 워워 안정시키기 위한 글이기도 하고. 쓰고 나니

사랑 가득한 몽글몽글한 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치열한 전투의 순간들은 지독하게 마음에 절로 남겨지므로 기록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언젠가 되돌아보는 날 아름다운 것들만, 감사함과 사랑만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실 건가요?”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직은 “난 절대 다시 태어나지 않을 거야.”이지만,
“혹여 다시 태어난다면, 흠… 비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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