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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살진 않겠어

나찬양 2023. 4. 8. 17:33

엄마가 돌아가신지 백이십일이 지나갔다.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태아 적 기억이 남아있는 듯,

나는 지금도 엄마에게 연결되어 있는 듯,엄마에게 종종 말을 건다.

엄마의 부재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엄마와의 짧은 통화가 사무치게 그립다.

 

 

브런치의 시작은 엄마와 나로 부터 비롯된다.
나는 산아 제한 정책을 정부주도로 펼치던, 둘만 낳아 잘살자라는 포스터가 게시판에 붙어있던,

칠십년대에 정말 흔하지 않은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엄마는 남들 하던 대로의 삶을 거부하신 양반이다.

나는 엄마의 튼튼한 두다리와 장대한 두개골과 통뼈를 물려받았지만,

엄마의 강단을 물려받지 못한게 아쉽다.

엄마는 항상 아닌걸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를 지니고 계셨으며,

그렇지 못한 나는 가끔 내가 엄마의 용기를 물려받았다면 아마도 하이브리드 울트라 수퍼우먼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을 한다.

놀기 좋아하고 술을 즐기는 낙천적인 아버지의 품성이 나에게 유전되어

나는 먹고 마시는데 삶의 대부분을 낭비해왔고 생전에 이런 것때문에 엄마와 많은 다툼이 있었다.

 

 

두세달에 한번은 야밤에 제사를 지내는 강릉의 종가집에서 태어난 엄마는

절대 제사지내는 집으로는 시집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번 고함을 쳤고,

그 당시만해도 어른들은 그런 그녀를 ‘말도 않되는 소리를 저렇게 지껄이는 우리 조카딸을 어떻게 할까’라는 눈으로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6.25 사변으로 양친을 잃고, 작은 아버지 이름으로 문패가 바뀌어 버린 집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꿈꿨다.

여기 이렇게 살다가는 학교도 못갈거야. 강릉을 도망쳐 나와 서울 외삼촌집에서

조카들을 돌보며 얹혀 사는 삶으로 그녀의 도시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또래의 여자들이 그래왔듯이 그녀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그토록 원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으며, 스무살이 되지않아 기계로 니트를 짜는 편물이라는 일, 노동을 시작했다.

꽃다운 이십대 중반에 여러 사람의 구애를 받았고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했지만,

벌이가 들쑥날쑥한 아버지의 직업과 넉넉치 못한 살림은 내아이에게 가난이라는 굴레를 넘겨줄 수 없다는 의지를 끊임 없이 확인시켰다.

그리하여 그녀는 나를 얼떨결에 낳고는 더이상 아이는 낳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엄마는 항상 다음 단계 즉 next step을 채근하는 분이었다.

회사에서 거의 모든 회의의 결론은 next step이다.

어찌보면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일 할 자질을 갖춘 사람인데 시대를 잘못만나 배움을 펼쳐보지도 능력을 내비출 수도 없었던 것이다.

멋진 정장을 입고 출근 하는 내모습을 바라보던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가 나처럼 30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좀더 쉽게 공부할 수 있었고,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한숨이 소비되었는지 잊어버릴때가 있다.

 

순간을 즐기기 보다 항상 다음을 이야기하는 엄마와의 대화는 말다툼으로 끝나기 쉬웠고,

지금도 가장 후회가 되는 부분은 엄마를 이기려했던 내 자신이다.

말 잘 듣는 십대 시절에서 벗어나 나도 마흔이 넘었고 머리가 컸는데 ‘엄마가 이렇게 나를 통제하려 하다니’ 에서 시작된 반항심은

엄마가 암선고를 받던 2017년 4월말에서야 끝났다.

그후 한해 동안 엄마를 위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막상 엄마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에 불과했다.

함께 좋은 기억을 쌓기 에도 부족한 시간은 수술, 치료, 입원으로 채워져버리기 일쑤 였다.

엄마를 모시고 엄마의 고향 강릉 바닷가에 가서 물회를 사드리고 싶던 나의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그녀의 이뤄지지 못한 꿈이 어느덧 따라온다.

나만 그러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내평생을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 라는 모토로, 때로는 고되기도 했던 직장생활을 버텨왔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고 엄마처럼 자식하나에 온 운명을 건 것처럼 사는 것이 싫어 나는 더 바깥 생활에 애써왔다.

 

엄마를 생각하면 그녀의 이뤄지지 못한 꿈이 어느덧 따라온다.

나만 그러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내평생을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 라는 모토로, 때로는 고되기도 했던 직장생활을 버텨왔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고 엄마처럼 자식하나에 온 운명을 건 것처럼 사는 것이 싫어 나는 더 바깥 생활에 애써왔다.

 

by 꼰대언니 https://brunch.co.kr/@maiteyan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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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자 | 30년을 직장이라는 굴레에서 살아왔다. 삼성전자 공채출신 첫 여성임원, 벤처기업 대표를 거처, 불나방처럼 조직을 위해 불사렸던 과거를 털고 아웃사이더로 변신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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