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야기

드라마 속 ‘우영우’로 보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나찬양 2022. 7. 30. 11:43

모든 사람은

신경증자, 정신병자, 도착자, 자폐증자 중에서 어느 하나로 분류되며,

‘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달 전쯤 거의 십 년 만에 후배 한 명이 포함된 대학 과 동기 모임에 참석했다. 

그동안 모임에 발을 끊은 이유는 학원강사로서 주말에 주로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나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거기다 다들 결혼하고 애까지 있는 친구들 틈에서 미혼인 내가

맞장구치며 할 얘기가 별로 없단 것도 발길을 주저하게 한 또 다른 이유였다.

요샌 주로 과외를 해 서 시간이 나기도 했지만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친구 녀석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갑자기 궁금해져서 모임에 오랜만에 참석하게 됐다.

나 포함 다섯 명의 오십 전후의 아저씨들이 종로의 한 호프집에 모였다.


십 년만큼 주름과 뱃살, 그리고 하고 싶은 말들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 있었다.

우리들은 최근 당선된 대통령 얘기부터 주식, 코인, 부동산 그리고 자식들 얘기까지

뻔한 레퍼토리를 하나하나 훑어나갔다.

 

술자리는 이차, 삼차로 이어졌고, 

마.침.내 어느 순간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각자가 관통하고 있는 단단한 삶의 진짜 ‘통증’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다들 무난하게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았지만,

속사정은 그렇지도 않았다. 모두 가 조금씩 다른 형태로 앓고 있었던 것이다.

 



위태위태한 삶을 살다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친구도 있었고,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힘겹게 온 몸으로 버티며 사업을 꾸려가는 녀석들도 있었다.

하지만 울진 않았다. 우린 남자 어른이라고 불리니까.

그런데 모임의 유일한 후배 녀석,

나처럼 통 행방이 묘연해 다들 궁금해하던 술 취한 후배의 눈물 댐이 왈칵 무너져버렸다.

울어버린 어른 남자의 아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마흔이 넘어 어렵게 얻은 아들이라고 좋아했던 후배의 아들이

자폐를 앓고 있단 얘긴 다들 처음 듣는 눈치였다.

다행히 중증도의 장애는 아니며 지속적인 치료와

후배 부부의 간절함 덕분으로 조금씩 좋아 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후배는 울었다.

장애를 가진 아빠이기에 더 단단해지고 강해져 야 한다고 말해주려다 입을 닫았다.

이미 그 말은 다른 동기 한 명이 해주고 있기도 했고,

그냥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자신의 삶을 연민하며, 애처로워하며 울게 두고 싶었다.

울다 중간중간 후배는 한탄처럼, 넋두리처럼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아이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런 모습을 내가 죽기 전에 볼 수 있을까요……”

 

시간은 새벽으로 향하는 중이었고,

곧 날이 새고 다시 돌아가 아이와 함께 후배가 헤쳐 나 가야 할 세상,

크고 작은 뾰족한 가시로 울타리 쳐진 세상을 생각하니 더욱더 울게 두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은

용기니 책임감이니 그런 거 말고 남자 어른도, 아빠도,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어도 애처럼 엉엉 울 수 있다고

조용히 그의 울음을 들어주며 위로해 주고 싶었다. 

 

후배의 눈물을 보며 그가 그토록 바라는 아이를 위한 ‘정상’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아득한 질문이 속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다. 

울던 후배를 마주하기 전에 이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드라마엔 천재적인 두뇌 의 소유자이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한 이십 대의 여자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 하기 때문이다.

예상할 수 있듯 주인공이 자폐에 대한 주변의 편견과 싸워나가면서

변호사로서 인정받고 세상과 소통해 나가는 이야기가 매회 새로운 사건과 함께 펼쳐진다.

자폐인도 천차만별이란 드라마 속 우영우의 말이 얼마나 당연한가는

‘정상성’이라는 판타지 뒤에 숨어 있는 우리의 사고 능력을 잠시 꺼내오면 금방 드러난다.

 

자폐 증상은 대부분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현되며,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정신적 그리고 신체적 특성은 사교성의 정도,

감수성의 차이, 쌍꺼풀의 유무, 다양한 피부색 등과 같이 숱하게 많다.

 

이런 발현된 유전적 형질 하나가

그 사람의 총체를 설명하는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는 아주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범주화는

자폐를 숱한 비정상의 하나로 단순화시키도록 우리들을 유도하며 유아기적 사고에 머물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든 아니면 우리가 가진 유무형의 소유물이든

그것들이 분명하고 명확한 어떤 범주에 속하고 분류되는 것을 대체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정상과 비정상에 서 출발해 남자와 여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진보와 보수, 새것과 낡은 것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그리고 이런 이분법은 결국 다시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거대한 범주 안에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꼭 이런 이분법이 아니더라도 결국 세상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범주(화)에 완벽히 순응하며 혹은 그런 척 살아간다.

아니, 정상인 척 살아간다.

 

정상의 범주에 속해 있음 에, 그런 척할 수 있음에 안도하며 매일매일을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서로 겹치지 않으며 ,범주화될 수도 없다.

다만, 80억 명의 다양한 그 누군가의 삶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해 서 모두 같은 모습으로 아프지도 않으며

아프다고 모두 건강이라는 ‘이상’을 향해 병원 앞 에 줄 서 있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한 때 가지고 있었다고 믿는 어떤 정상성을 되찾고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발 버둥치는 일이라고.

 

그리고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잃어버리거나 도달해야 할 ‘정상성’이라기보단,

끊임없이 미끄러지더라도 사회가 정해 놓은 것이 아닌 각자의 윤리를 발견 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 윤리란

자신이 자신 다울 수 있는 가치로 인해 아프고 고통 받고 있단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우리 모두는 다 자신의 방식으로 아픈 것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라면 분명 정상과 비정상의 분별은 힘을 잃고 경계는 좀 더 흐릿해질 것이다.

 



자폐인의 살인 사건을 수임받은 주인공 우영우는

중증도 자폐인인 피고를 이해하기 위 해 아버지에게 묻는다,

자폐인과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 나눌 수 있는지.

아버지 : ……역시, 자폐인과 사는 건 꽤……
우영우 : 꽤?
아버지 : 외롭습니다.

아빠 생각에는 이 세상에 너랑 나랑 둘뿐인 거 같은데,

딸인 너는 아빠한테 전혀 관심이 없거든.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땐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속 우영우의 아버지가

딸을 깊이 사랑하고 있단 건 쉽게 알 수 있다.

아버지는 딸과의 소통 방식이 소위 말하는 다수의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외롭다는 걸 아프지만 인정한다.

하지만 다르다고 자식에게 정상의 언어를 강요하거나 가르치기 보다

다른 그 모습 그대로 우영우가 자신의 삶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바라봐준다.

사랑에 대한 한 가지 정의를 드라마 속 우영우의 아버지의 태도를 통해 다시 배워가는 기분이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타고난 자신의 무늬를 낙인이 아니라

고유한 개성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흐트러짐 없는 따뜻한 시선이 아닐까.

 

작가 청진 https://brunch.co.kr/@bkcheong24

 

청진의 브런치

프리랜서 | 궤도를 벗어나 홀로 이탈한 사람들, 하지만 치열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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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뭔가 생각할것도,,

할말도 많게 만드는 글이라

고유해봅니다

 

늘 행복하세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